말의 힘을 빌려 마음속 풍경을 밖으로 꺼내게 된다. 표현된 말은 세심한 마음과는 달리 뭉툭하거나 투박하다. 그 말에 자신을 규정하거나 가둬두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단어 하나를 쓰는 것도 꽤 조심스러워진다. 맞지 않은 단어로 섣불리 나를 규정하지 않기 위해, 나만의 말 수칙을 정리해 봤다.

얼마 전, 동네 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한 무리의 고등학생들이 카페로 들어왔다. 음료를 시키고 테이블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더니, 책 읽기에 집중해있던 나의 신경은 어느새 그들의 대화에 쏠려 있었다. ‘ㅈ’과 ‘ㄴ’이 포함된 단어가 난무하는 것은 물론 숫자가 섞인 욕은 기본이었다. 아마 대화의 70% 정도는 욕이 포함되었던 것 같다. 생기 넘치고 발랄하다 못해 날 것(?)이 느껴졌던 대화라고 해야 할까. 목소리는 또 어찌나 크던지. 욕 섞인 대화를 들어야만 하는 카페 직원들이 조금 안쓰럽기도 했다.

순간 부끄러움이 일어났다. 아, 나도 고딩 때는 ‘ㅈ’과 ‘ㄴ’이 섞인 단어를 참 많이도 썼었지. 그때는 그냥 별 뜻 없이, 생각 없이 사용한 단어였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지극히 일상적인 표현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절대 쓰지 않는 말이 되었다.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는 게 적절할 것 같다.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이 있듯이, 해야 할 말과 하지 않아야 할 말도 있다. 그리고 가려야 할 말은 상대가 누구이냐, 어떤 관계와 어느 때에 놓여있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조건과 환경, 사람을 불문하고 하지 말아야 할 말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것을 나만의 말 수칙으로 만들어 놓기도 했다. 그중 하나는, 아래 두 가지 표현을 가급적 하지 말자는 것.

첫째는 ‘귀찮다’라는 표현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그 말에는 게으름의 농도가 짙게 배어있는 것 같다. 그 단어를 쓰지 않으려는 이유는 스스로를 부지런한 사람으로 포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실 나는 한 ‘게으름’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하기 싫은 일을 처리해야 할 때 ‘미룰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미루라! 그러면 오히려 일의 능률이 더 높아진다’라는 신념(?)이 확고할 때가 있다. 신념을 지나치게 믿었다가 일을 그르쳐 후회와 자책이 뒤따랐던 적도 많았다. 때문에 ‘귀찮다’라는 표현을 지양하는 것은 게으른 성향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노력인 셈이다. ‘귀찮다’라는 말을 하면서, 귀찮음을 일으키며, 마음속에서 게으름의 농도가 더 진해지지 않도록 노력한다. 대신 ‘번거롭다’, ‘번다하다’, ‘성가시다’, ‘거추장스럽다’, ‘피곤하다’, ‘짐스럽다’, ‘부담스럽다’ 등의 표현으로 귀찮음 속에 내재된 게으름을 희석하려고 한다.

두 번째 표현은 ‘짜증난다’이다. ‘짜증난다’는 말은 입으로 내뱉는 것은 물론 마음속으로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말은 한번 내뱉으면 그 말의 힘이 더 크게 작용되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어감이 가득한 이 표현은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짜증의 강도가 더 강해진다. 전염력도 아주 강하다. 짜증이 가득한 사람의 옆에 있으면 나도 덩달아 마음이 불쾌해지고, 짜증이 일어난다. 이 단어를 쓰지 않는 것은 나는 물론 내 주변 사람들을 위한 작은 배려이다.

소설가인 김영하 작가는 제자들에게 ‘짜증난다’라는 표현을 글에서 쓰지 않도록 가르친단다. 소설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감정과 마음을 글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을 ‘짜증’이라는 하나의 표현으로 ‘퉁’ 쳐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짜증의 감정을 좀 더 들여다보면 ‘화’, ‘슬픔’, ‘갑갑함’, ‘답답함’, ‘언짢음’, ‘억울함’, ‘못마땅함’ 등의 감정이 가려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짜증이라는 말을 내뱉기 전에 짜증 속의 진짜 감정을 파악한다면 자신의 마음 상태를 좀 더 정확하게 아는 기회가 된다.

말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힘이 있다. 말 한마디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경험을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하게 될 것이다. 한번 내뱉은 말은 전혀 다른 상황에서 전혀 다른 맥락으로 나에게 되돌아올 수 있고, 그 말이 지닌 의미와 비슷한 에너지를 나에게 몰고 오기도 한다.

어떤 단어를 주로 사용하는가. 어떤 표현을 빌려 생각과 마음을 전하는가. 감정을 담는 어휘는 나의 마음 상태를 확인하는 신호가 되기도 한다. 자신과의 관계, 상대방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매개이기도 할 것이다. 말, 단어, 표현이 자신에게 어떤 식으로 되돌아오는가. 한마디 말에 훈훈함의 농도가 짙어 따뜻함으로 가득 충전되었는가. 자신과 상대방의 마음에 날카로운 화살로 꽂혀 아픔의 강도가 더 세게 느껴지지는 않았는가. 내가 쓰는 말의 농도와 강도는 어떠한지 한 번쯤은 살펴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