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는 현상의 원인과 이유를 알 수 없을 때, 답답하고 두려워지기도 한다. 당장 찾아낼 수 없는 원인과 이유는 아주 오랜 기억, 무의식에서 비롯한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을 알아차린 순간, 많은 것들을 이해하게 되고 받아들이게 된다. 아빠가 떠난 지 5년이 흘렀다. 아빠는 여전히 내게 귀중한 공부 거리를 전해주고 있다는 것을 지난 꿈을 돌아보며 알 수 있었다.

얼마 전에 꿈을 꾼 이야기다. 꿈속에서 나는 밥을 지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밥솥 뚜껑을 열었더니 누런 밥에서 묵은 냄새가 났다. 오래된 밥솥이었던 것 같다. 그 솥으로는 밥을 지을 수 없다고 생각했었는지, 나는 새 밥솥을 장만하러 나갔다. 묵은 밥, 상한 밥으로 식사를 차려드릴 수는 없었으니까. 새 밥솥을 장만하면서 ‘아빠에게 좋은 밥을 지어드려야지’라고 생각한 순간,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꿈에 아빠가 나타나거나, 꿈에서 아빠와 연관된 이야기가 펼쳐질 때면 마치 현실인 듯 너무나 생생하다. 그날도 그랬다. 지금 막 일어난 일인 것처럼 느껴진 탓에 꿈을 깨고도 한참 동안 잠들지 못했다. 오히려 더 또렷해진 의식으로 생각에 빠져버렸다.

‘왜 아빠는 항상 비슷한 내용으로, 비슷한 시기에 꿈에 나타나는 걸까.’

꿈속에서 마주하는 아빠와 나는 매번 ‘밥’을 가운데 두고 있었다. 어떤 날엔 언니와 함께 근사한 식사 준비를 하는 꿈이었는데, 그건 아빠를 위한 밥상이었다. 또 다른 날에는 내가 부엌에서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아주 곱게 만든 하얀 죽이었고, 그 죽 또한 아빠를 위해 만든 음식이었다. 아빠가 떠난 후, 아빠를 위한 지장경 3년 기도를 회향할 무렵에도 꿈에 아빠가 나타났다. 나는 아빠에게 “이 돈으로 맛있는 거 사드시고, 저녁에 딸내미들 해 줄 반찬거리도 사오세요.”라며 3만 원을 건네드렸다.

굳이 꿈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하룻밤 사이에 서너 개의 꿈을 기본으로 꾸는 내게 꿈이 뭔 의미가 있겠는가. 다만, 온갖 꿈을 꾸는 동안 잠자리가 편안하지 못해서 한동안 꿈 공부를 한 적은 있다. 그때 공부한 내용으로는 꿈이란 뇌 속의 신경 세포가 무작위로 기억 속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서 꾸며낸 스토리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그래, 별것 아니겠지.’라는 생각으로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고 했다.

그렇지만 꿈에 아빠가 주인공으로 나타날 때는 왜 항상 밥이 소재가 되는 걸까. 뇌세포가 꾸며낸 스토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늘상 밥이 함께 등장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스토리의 소재도 기억에서 축적된 것을 끄집어냈을 텐데, 그렇다면 나와 아빠, 그리고 밥에는 어떤 연결고리가 숨겨져 있는 걸까.

그때 알아차린 건 내 안 깊숙한 어딘가에서는 아빠와 밥이 같은 등식으로 매겨져 있다는 기억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집안의 부엌살림은 내가 도맡아 했었다. 당연히 아침, 저녁으로 아빠의 끼니를 담당한 것도 내 몫이었다. 등교를 하기 전에 아침상을 차려드리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새 반찬과 국을 만들어서 저녁상을 차려드렸다. 나는 아빠에게 살가운 딸은 아니었고, 아빠도 자식들에게 책임감 있는 가장은 아니었다. 막내딸이 아빠에게 건넨 대화가 고작 세 마디뿐이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중 하나가 ‘진지 드세요’였으니, 어쩌면 아빠와 내가 연결될 수 있었던 매개는 ‘밥’이 유일했을지도 모른다(나머지 두 마디는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였다).

타지의 대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면서 더 이상 아빠의 식사를 차려드리지 않았다. 그 후 아빠는 10년 동안 요양병원에서 지내시다가 삶을 떠나셨다. 생전의 아빠를 마지막으로 본 날은 돌아가시기 한 달 전이었다. 거동을 하지 못해 병상에 누워만 계셨고, 팔다리가 앙상했다. 너무나 앙상했던 그 모습은 여전히 아프게 기억되고 있다. 오랜 병원 생활로 먹고 싶은 음식, 맛있는 음식도 마음껏 드시지 못했을 텐데. 아빠가 떠난 후, 가족들과 함께 아빠가 좋아했던 음식을 먹을 때면 혼자서 눈물을 삼키곤 했다. 맛있는 음식, 좋은 밥을 해드려야 한다는 꿈속 이야기는 아빠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스스로 만들어낸 책무일지도 모르겠다.

아빠가 꿈에 나타날 무렵도 늘 비슷한 시기다. 아빠의 생일이나 제사 즈음, 그리고 안거 기도가 시작될 무렵이다. 얼마 전 꿈에 나타난 시기도 하안거 기도를 앞둔 날이었다. 지난 3년간 아빠를 위해 기도를 했고, 안거 동안에는 더 마음을 모아서 아빠를 위하는 시간으로 삼았다. 3년 기도를 회향해도 안거 기도는 빠짐없이 하고 있다. 아마도 얼마 전에 아빠가 꿈에 나타난 건 기도 기간을 알려주기 위해서, 내 마음을 다시 한번 더 살펴보라는 의미가 아니었을지.

어떤 사건이든, 인연이든 경험하는 것들은 그것을 마주하게 된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그 이유를 반드시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이유를 알게 됨으로써 자기 자신과 관계, 상황을 더 이해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나와 아빠 그리고 밥의 연결고리를 알지 못했을 때는 괜한 상상을 하며, 마음이 뒤숭숭했었다. 연결고리를 굳이 찾으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오랜 기억, 무의식 속에 감춰져 있던 마음을 알게 되니 아빠에 대해서, 아빠를 대하는 나의 모습에 대해서 조금 더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예전의 기억으로부터 언제쯤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그 시기를 알 수는 없지만... 아빠가 꿈에 나타나더라도 괜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한다. 기도하는 마음이 가장 아름다운 마음일 테니, 지금은 돌아가신 아빠를 위해서 그리고 가족과 나를 위해서 기도하는 마음자리에 돌아오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