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마음이 가장 아름다운 마음자리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원하고 바라기보다는, 맑고 밝은 자리로 돌아와 자신과 상대방을 대하는 따뜻하고 선한 힘을 기르는 것. 그게 바로 기도하는 이유이자 기도의 힘이지 않을까. 하안거 기도를 반절 정도 건너오면서, 지나간 기도했던 시간을 돌아보았다.

첫 기도의 기억은 100일간의 금강경 독송과 108배 참회 기도였다. 막막함과 불안감을 온몸으로 떠안은 채 20대에서 30대로 건너고 있었다. 지금은 지나간 일이 되어 덤덤해졌지만, 그 당시엔 힘듦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될 것만 같았었다. 왜 내가 이런 경험을 해야 하나. 남들은 평생 가도 절대 겪지 않을 일이 왜 나에게 벌어진 걸까. 누구를 탓할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모든 관계와 상황에서 참 비관적이었다. 마침 법우들과 금강경 스터디를 하고 있었다. 금강경의 의미도 몰랐지만 매일 밤마다 독송했다. 그리고 아침에는 일어나자마자 108배 참회 기도를 했다. 무엇에라도 매달리고 싶었고, 어서 빨리 그 상황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그해 마지막 날이었던 2017년 12월 31일, 오랫동안 인연을 맺고 지내왔던 스님의 절에서 연말을 보내게 되었다. 스님께서는 3,000배 독송집을 건네주시더니 하루 동안 3,000배를 하란다. 처음 1,000배는 지나간 과거의 인연에 감사함을 전하면서, 그 다음 1,000배는 현재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인연들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그리고 나머지 1,000배는 앞으로 다가올 인연들에게 고마움을 담아 절을 하라고 하셨다. 그날 새벽 예불과 함께 시작해서 저녁예불이 끝날 때까지 홀로 법당을 지키며 절을 했다. 한겨울이었지만 금새 땀범벅이 되었고, 무릎과 허벅지, 허리가 점점 아파져 왔다. 그러다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눈물의 이유는 없었던 것 같다. 3,000배 절을 마치고 나니 스님의 말씀대로 나에게 남은 건 감사함뿐이었다.

많은 변화가 있었던 다음 해, 직장을 그만두고 취업준비생으로 연초를 시작했다. 대다수 취준생의 마음이 그렇듯 나도 마찬가지로 자존감이 많이 낮아 있었다. 불안해하지 않기 위해서는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보내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작한 게 21일간의 새벽예불 동참이었다.

때마침 집에서 횡단보도 한 개만 건너면 되는 3분 거리에서 오래된 도심 포교당을 발견했다(희한한 건, 그 동네에서 4년을 지냈었는데 이전에는 포교당을 한 번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새벽 4시 30분에 시작하는 새벽예불에 동참한 후 홀로 남아 기도를 마치고서 집으로 돌아오면 아침 7시였다. 취업 발원을 기도했던 건 아니다. 새벽예불을 나감으로써 하루를 좀 더 부지런하게 보내는 게 목표였다. 그래야 마음이 놓일 것만 같았다. 기도 후에 집으로 돌아와 아침에는 학원에 나가고, 도서관에 가서 시간을 보내는 등 나름대로 계획적인 취준생 생활을 이어나갔다. 다행히 21일 기도가 끝나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원하던 일을 시작하게 됐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그 이후의 기도는 아빠를 위한 기도였지만 결국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아빠의 발인식 하루 전날, 조문을 왔던 법우가 신신당부를 했더랬다. 아빠를 화장터로 안내하고 나면 네 마음이 너무너무 힘이 들테니, 그때는 꼭 광명진언만 외우라고. 발인식 날, 법우의 걱정이 들어맞았다. 그 시간을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미안함과 죄책감, 원망이 너무나 버거웠다. 하지만 당부대로 광명진언을 외웠다. 버티기 위해서였던 것 같기도 하다. 화장터 모퉁이에 앉아 울고 울며 광명진언을 외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순간 주변이 환해지는 게 느껴졌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꽉 채워지는 것 같았다. 죄책감과 미안함의 얼룩은 사라져 있었다. 유년기의 자라온 환경이 어쨌건 간에 나는 지금 이곳에서 잘 지내고 있으니, 지금 내가 좋은 사람들을 만나 복된 생활을 하고 있는 건 어찌보면 아빠가 지어준 인연 덕분이 아니겠는가. 한 시간도 채 안되는 시간 동안 아빠를 바라보던 나의 마음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빠의 마지막을 죄송한 마음이 아닌 감사함과 고마움으로 보내드릴 수 있게 되었다는 건.

3년간의 지장경 기도는 아빠에 대한 감사함에 보답하고 싶어서 시작했다. 아빠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아빠의 지난 업이 지장보살님의 위신력으로 씻겨나갈 수 있기를, 단 하나의 마음으로 기도했다. 그리고 3년 기도를 회향하던 날, 꿈에 나타난 아빠의 모습은 지난 3년에 대한 충분한 대답이 되어주었다.

“너희들은 부처님이야. 우리 모두가 바로 부처님이야.”

어렸을 적, 꼬맹이었던 우리들에게 스님들께서 늘 하셨던 말씀이었다. 부처님이 어떤 존재인지도, 스님들께서 하신 말의 의미도 당연히 몰랐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나는 그 말을 믿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내게 기도란 기복적인 의미보다는 부처인 내가 스스로 해낼 수 있는 힘을 가지는 시간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우리 모두가 부처님이라고 하는 그 말을 믿어보자. 그러면 내 안의 부처와 같은 힘이 자연스럽게 일어나지 않을까’하는 마음이었다.

돌아보니 기도는 순간순간 나를 살려낸 시간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매일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하지만 힘든 상황에 놓여있을 때 더 간절해지는 법이다. 마음과 환경의 큰 변화가 있을 때마다 잘 지나올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시간이었다. 지나간 일은 흘려보내고 다시 지금으로 돌아오도록 해주었다. 아직은 기도하는 마음이 나를 향하고만 있지만 나의 온전함을 더 깨닫게 된다면 모두를 향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글을 쓰는 내내 틱낫한 스님의 기도문이 떠올랐다.

“바라건대 우리 마음속 깨달음의 정원에 수백 가지 꽃들이 피어나기를.

이 세상 고통에서 달아나려 하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곳마다 늘 그 자리에 있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