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을 시작하면서 꽤 오랫동안 나를 못살게 굴었던 생활 습관이 바로 ‘음주’이다. ‘부어라, 마셔라’, ‘잔을 위로’를 끊임없이 외쳐대던 사람이 음주를 멀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행히 지금은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번 글은 술자리와 이별하는 시간을 그려보았다.

 “명상 수행을 하겠다고 하면서도.. 고요히 앉아 있는 시간보다 마음이 들떠 있는 시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술을 마시는 자리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어떻게해야 금주를 할 수 있을까요?ㅜㅜ”

3~4년 전이었다. 1주일간 집중수행을 하기 위해 명상센터에 갔을 때, 인터뷰 시간 중 스님께 했던 질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조금 부끄러운 질문이다. 그런데 나는 정말 진지했고, 나름 절박했으니... 용기를 내어! 스님께 물었다. 수행을 삶의 중심에 두려던 내게 ‘음주’는 가장 큰 고민이었다.

같은 업을 지닌 사람들끼리 모인다고 한다. 우리 가족을 보면서 그 말의 의미를 절절하게 느끼게 된다. 우리가 가족의 인연을 맺게 된 무수히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강력한 요인은 바로 ‘술’이 아니었을까. 내가 술을 아주 좋아했던 건(다행히 과거형이다), 술을 아주아주 좋아했던 엄마, 아빠의 피를 고스란히 물려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불교적으로 말하자면 술을 좋아했던 나의 업식이 마침 나만큼 술을 좋아하는 엄마, 아빠에게로 향했다고 하는 게 맞겠지만. 그건 우리 언니들도 마찬가지다. 가족 모임을 할 때면 박스째로 술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다(이건 가족 수가 많아서이기도 하다. 어른 12명이 모이면 그 정도는 준비해야 하지 않는가?!).

좀 더 엄격하게 구분을 짓고 싶은데, 나는 ‘술’을 좋아했다기보다는 ‘술자리’를 좋아했다고 말하고 싶다. 워낙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고,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는 늘 빠지지 않았다. 모이면 술을 빼놓을 수 없는 대학 시절을 보냈고, 어느 곳에서든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성미를 술자리에서도 십분 발휘했다. 다행히 그런 모습이 밉상, 진상은 아니었나 보다. 술자리에서의 나의 모습도 사람들은 좋아라해주었고 지금도 종종 즐거운 추억으로 옛 이야기를 꺼낸다(음주 후 여러 번 사고를 쳤던 기억도 있는데, 누군가를 다치게 했다거나 내가 다쳤던 적이 없었던 건 너무 다행스러운 일이다.).

졸업 후, 첫 직장도 술자리를 많이 가질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술자리를 가짐으로써 프로젝트가 잘 성사되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매끄러워졌었다. 그러니 일을 마치면 자연스럽게 술자리로 이어졌다. 나는 분위기 메이커이자 그 자리를 주도하는 역할을 자처했다.

20대 후반부터 다니기 시작한 청년회에서도 술자리는 이어졌다. 비슷한 또래들이 어울리는 데 당연히 술이 빠질 수 없었겠지. 게다가 술자리 코드까지 맞는 사람들을 만나는 바람에 술독을 오래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들의 술자리는 평일, 주말을 가리지 않았다. 절에서 기도며 봉사활동을 하고 난 후에 일주문을 벗어나면 새로운 사람들이 되었다. 새벽 첫차가 올 때까지 종로 구석구석을 배회하는 청춘들이었다. 신행생활은 신행생활대로 잘하고, 놀고 마실 때도 최선을 다하지 않느냐며 나름 어깨를 으쓱하기도 했다.

술자리(혹은 술)를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현타가 오기 시작한 건 명상센터를 다니기 시작할 무렵부터다. 명상을 하겠다며 좌복에 앉아 앉아있다가도, 지인들과 함께 할 때면 술을 마시면서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이중생활이 다름없었다. 평범한 일상이라고 여겼는데, 사실은 균형을 잃은 생활이었음을 직면하면서 충격을 받은 것 같다. ‘정신을 흐리게 하는 것을 삼가겠다’는 발원은 말뿐이었던 건지? 좌복에 앉아있을 때의 고요함과 술자리에서의 들뜸을 느끼며 괴리감이 생겼고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싫으면서도 술자리를 즐기고 술을 마시고 있었으니 업業과 습習이라는 건 참 무섭다. 그렇게 마시고 괴로워하고, 또 마시고 괴로워하고... 그럴수록 금주에 대한 강박에 더 사로잡혔던 것 같기도 하다. 된통 술을 마신 후에는 3~4일 동안 후회와 죄책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렇게 반복했던 생활이 오죽 답답했으면 대중들 앞에서 창피함을 무릅쓰고 스님께 질문을 했을까.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됐냐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요즘은 이중생활에서 많이 벗어났다. 코로나19의 영향이 크다. 덕분에 사회적 거리두기 뿐만 아니라 술과의 거리두기도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그 무렵, 석사논문에 집중을 한 것도 절주에 큰 몫을 했는데, 논문을 쓰던 6개월 간 술을 한 잔도 마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4년 전, 현재의 집으로 이사를 할 때, 집에서는 절대 혼술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지금까지 잘 지켜낸 것도 칭찬할 일이다.

한창 음주 생활로 고민이 많을 때, 스님들이나 나와 비슷한 시기를 겪었던 재가 수행자들은 ‘때가 되면 저절로 끊게 된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그때는 그 말을 신뢰하지 못했다. 도대체 그 ‘때’라는 게 언제인 건가. 나는 지금 당장 벗어나고 싶은데 얼마나 더 기다려야하는지... 답답하기만 했다.

돌아보면, 그때는 간절했더라도 나는 그럴만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 같다. 여전히 내 안에는 예전의 습관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환경을 바꾸기 위한 용기도 내지 못했다. 그러니 술자리를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그렇다면 그 ‘때’는 언제 도래하는 걸까. 혼자만의 열망,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때’는 모두의 상호작용을 통해 갖춰질 수 있다는 것을 술자리와 헤어지는 과정에서 느끼게 되었다. 누군가와의 만남보다는 홀로 지내며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의 필요성을 어느 순간 알게 되었고, 마침내 그럴만한 조건이 자연스레 갖춰졌다. 나의 노력과 더불어 기다림도 필요하다는 것. 일련의 과정을 돌아보면서 알게 된 작은 깨달음이다.

한 가지 더 알게 된 게 있다면, 음주를 하면서 나를 괴롭힌 주범은 ‘술’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낸 강박이었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을 만들어 놓고서는 습관대로 행하고, 그러면서 후회와 죄책감으로 자기비난을 며칠 동안 퍼부어 대고...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렸으면 충분한데 왜 며칠 동안이나 스스로를 괴롭혔던 건가. 참 어리석었던 것 같다.

글의 제목처럼 술과의 관계는 아직 ing다. 완전하게 헤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술자리 빈도에 나름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건강검진표에 음주 횟수를 월 1회라고 체크 하면서 ‘이런 날이 오기는 하는구나’라며 감격스러워 했다). 술자리 빈도는 줄었지만, 어쩌다가 한 번씩 술자리를 갖게 되면 예전처럼 열심히 술잔을 부딪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내가 나를 믿을 수 없으니, 그런 자리는 웬만하면 찾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이제는 스스로 만들어낸 강박에서도 벗어났다. 무엇이 내게 유익하고 해로운지 분명하게 알고 있고, 유익한 선택을 하기 위해 마음의 길을 내고 있으니 ‘꼭 해야 해’, ‘절대 하지 말아야 해’라는 강박을 가질 필요가 없게 되었다. 유익한 방향으로 마음의 길을 내다보면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저절로 하지 않게 되어진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사실은 지난 주말에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이자 도반과 열심히 술잔을 부딪혔다. ‘최선을 다해서 신나게 즐기리라!!’라고 약속 장소로 가며 했던 다짐을 아주 잘 지켜냈다. 덕분에 다음 날 한나절을 몽땅 날려버리긴 했지만(^^) 그 모습을 보며 괴로움을 만들지는 않았다. 술잔을 부딪히며 주고받은 이야기가 더없이 좋았는데 굳이 불편한 감정을 덧칠할 필요는 없지 않나.

이렇게 점점 '술'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