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쭉날쭉했던 장맛비에 뜨거웠던 폭염이 지나고 태풍까지 휩쓸고 가서야 유난스러웠던 날씨가 조금은 평정을 찾은 것 같다. 한동안 비가 많이 오고 덥다는 이유로 창문을 꽁꽁 닫고 에어컨 바람에만 의지했었다. 한여름의 열기가 식고 나니 요즘은 밤마다 창문을 활짝 열어둔다. 그리고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여름 밤바람, 여름 밤공기를 느껴본다.

내 방은 한 면이 통창으로 되어 있다. 덕분에 창 너머의 바깥 풍경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크다. 낮에는 하늘과 나무를 보며, 밤에는 맞은 편에 위치한 아파트와 자동차의 불빛을 보며 나름의 야경을 즐기기도 한다. 자동차 소리가 시끄럽게 느껴졌던 낮과는 달리 밤은 그렇지 않다. 자동차 바퀴 굴러가는 소리, 시골도 아닌 이곳에서 고요한 밤 풀벌레 소리까지 듣고 있자면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반갑다.

그때도 지금처럼 밤을 좋아했었다. 예나 지금이나 늦은 밤이 되어야 뭔가에 집중할 수 있는 걸 보면 나는 야행성임이 분명하다. 숙제나 공부를 하다가, 라디오를 듣다가, 또 밤이라는 핑계로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다 보면 새벽은 느린 듯 참 잘 흘러갔다.

그 시간에 듣는 풀벌레 소리, 소쩍새 소리도 참 좋아했다. 어렸을 적 내가 살던 곳은 아담한 시골 동네였고, 우리 집 바로 뒤편에는 낮은 산이 있었다. 모두가 잠든 밤, 홀로 깨어있었지만 여름이면 유난히 더 크게 들렸던 풀벌레 소리, 소쩍새 소리 덕분에 쓸쓸하지 않았던 것 같다.

‘밤’이라는 게 참 그렇다. 감수성이 짙은 사람이라면 이 밤을 가만히 두지 못할 것이다. 밤이 되면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건 나만 그런 게 아닐 테다. 그런 마음을 어떻게든 표현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편지쓰기가 취미였던 그때는 늦은 밤이 친구들이나 선생님, 스님들께 편지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간이었다.

좋은 건 좋다고, 고마운 건 고맙다고 꼭 마음을 전하고 싶어 했었다. 순수했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당신 덕분에 제가 이렇게 잘 지내고 있어요. 감사해요.’ 그 마음을 잘 표현하는 건 인지상정이라고도 생각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이전과는 다른 마음가짐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감정표현이 특히 그렇다. 싫은 걸 싫다고 거침없이 표현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좋은 걸 좋다고 아낌없이 표현했던 마음을 이제는 조금씩 숨기게 되는 것 같다.

나의 표현이 상대방에게는 부담이나 또 다른 책임감을 갖게 할 수도 있다는 것. 서툴렀던 표현이 상대방은 부담으로 느꼈고, 그게 되려 나를 다치게 했던 아픈 경험이 있다. ‘좋은 마음도 상대방의 입장을 살펴보고, 상대방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선에서 해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남겨지긴 했다. 그리고 좋은 감정, 고맙다는 마음을 때로는 숨길 수 있어야 한다고 마음먹게 되기도 했다. 조심스러워졌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조금 소극적이어졌다고 해야 할까.

이 글을 쓰는 오늘 밤도 유독 풀벌레 소리가 가깝게 느껴진다. 마음이 또 몽글몽글... 고마운 사람들이 떠오르긴 하지만, 그들에게 연락해 안부를 묻기보다는 대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좋다는 표현을 감추고 미루다 보면 정이 메말라지는 건 아닐지, 마음을 건조하게 하는 건 아닐지 염려도 했었다. 그러나 좋은 감정이 내 안에서 더 여물어질 수 있도록, 익어질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려고 한다. 지금 당장 표현하지 않더라도 마음에 새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마음에 새긴 자국은 쉽게 사라지지 않으니까.

요란하고 뜨거웠던 여름의 절반이 지나가고 나니 금방이라도 가을이 올 것 같은 여름밤이다. 글을 쓰면서 나를 좀 더 여물어지도록 돕는 이 계절을 보내는 중이다.🌵

님, 태풍도, 무더위도 피해 없이 잘 지내시죠?

지난 주말에는 가족 모임이 있어서 고향에 다녀왔어요. 가족들은 모두 도시에 나와 살고 있어서 고향에는 좀처럼 갈 일이 없어졌는데요. 마을을 빙 둘러싸고 있는 낮은 산과 댐, 깨끗한 계곡을 보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게 자랑스럽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이런 감수성을 품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제 고향의 시원한 계곡 풍경을 함께 담아 보냅니다.^^

보름에 한번씩 연재를 하고 있어서인지, 유독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 같은 요즘 입니다. 밤에는 선선한 공기에 지낼만 하지만 여전히 낮 시간은 많이 더워요. 남은 여름도 건강히 잘 마무리하고 하늘이 좀 더 쾌청해진 9월 1일에 다시 올게요. 언제나 늘 그렇듯, 매일매일이 편안한 날들이셨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