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의 방황기에 놓였을 때 인왕산 자락길과 남산 둘레길을 걸으며 서울 야경을 바라보는 걸 좋아했었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머물면서 해가 뉘엿뉘엿 저물 때까지 기다리고는 했었다. 분홍빛 노을이 아주 아름답게 펼쳐졌던 날, 나도 모르게 불쑥 내뱉은 고백에서 서울 야경이 내게 전해주는 의미를 알게 되었다.

잠시 바람을 쐬려고 올라간 옥상 정원에서

서울을 내려다보았다.

그날따라 유독 하늘이 맑았고

하얗고 아름다운 뭉게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 아래 빼곡하게 세워진 높고 낮은 건물들,

끝없이 펼쳐진 마천루,

여전히 내게는 낯선 서울이었다.

경북 청도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고,

말 많고 탈 많았던 20대를 전북 전주에서 지냈다.

무슨 인연이었던 건지 서울에 정착하여

어느새 안정기에 접어들던 무렵,

그때가 서른한 살이었다.

이곳에 서서 서울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게

마냥 신기하기만 했었다.

‘어쩌다가 나는 이곳에 오게 된 걸까.’

서울 도심을 바라볼 때면 늘 던지던 물음이다.

그날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건네고 있었다.

지역적인 거리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나온 곡절을 돌아보면

지금 나의 생활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신기함과 의아함이 반반씩.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감상에 젖었던 그날

우연히 펼친 책에서

질문에 답이 되는 글을 발견하였다.

“지나온 모든 시간이 나를 이곳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많은 것을 감당해야 했던 어린 시절이,

나밖에 몰랐던 철부지 여대생의 추억이,

한없이 좋아했고 또 한없이 미워했던 시간이,

방황의 흔적들이, 다시 나를 찾고자 했던 노력이

그 모든 것들이 이곳으로 나를 데리고 온 것이었다.

그랬구나.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던 건 지나온 모든 시간들이었구나.

그래서 서울을 내려다볼 때면

마음이 착해지는 것 같다고,

분홍빛 노을이 포근하게 내려앉던 날

서울 야경을 바라보며 고백했었다.

불쑥 내뱉은 고백에

놀랐던 건 되려 나 자신이었다.

‘착해지는 것 같다’라는 말은

원망하고 미워하고 아파했던 그 시간이

모두 감사함으로 치환되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어느새 지나온 시간에 대한 저항감보다는

받아들이는 마음이 더 자라나 있었다.

그래서인지 서울 야경을 바라보는 건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수용하고

감사해하는 시간이 되었다.

저항감에 휩싸일 때,

사람과 삶에 원망이 느껴질 때,

마음이 차가워졌을 때,

서울의 야경을 보기 위해 남산을 오른다.

해가 가라앉은 서울 도심을 눈에 담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따뜻하게 데워져있음을

느끼게 된다.🌵

서울 야경을 바라보는 건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수용하고 감사해하는 시간이 되었다. ⓒ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