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고 바라던 일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이뤄질 때마다 ‘운명’이라는 단어를 참 많이도 떠올렸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러한 일들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분명한 이유는 씨줄과 날줄을 엮듯, 시절과 인연이 서로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은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시절인연’이라는 순리를 어느새 점점 받아들이고 있었다.

운명론을 신뢰하지는 않지만

운명 같은 게 존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적이 몇 번 있다.

절대 이어질 수 없을 것 같아서

포기했던 일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순간에 물꼬가 트여

마법같이 이뤄졌을 때.

환경의 변화로

오랫동안 서원했던 일들이 성사되었고

다음 수순으로 나아가야 할 시점에는

또 그에 걸맞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갖춰졌을 때.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견딜 수 없어서

답답함과 간절함을 품고 책을 펼치면

그곳에서 늘 해답이 되는 길을

발견할 수 있었듯이

이뤄질 수 있을까?

해낼 수 있을까?

닿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서원이 적절하게 포개어졌을 때

참 희한하게도

모든 것들이 이루어졌었다.

시간과 사람의 틈을 오가며

지휘하는 누군가가 있었던 걸까.

마치 계획된 일이었던 것 같다.

짜 맞춰지듯 성사되는

일련의 일들을 경험하면서

참 많이도 놀라웠었다.

원하던 바가 이뤄진 것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안도감과는 별개로

그렇게 전개될 수 있었던 이유를

당최 알 수가 없으니

뭉뚱그려 퉁치기 딱 좋은 게 바로

‘운명’, 이 두 글자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내 삶을 이끌고 가는 지휘자는

‘나’가 아닌 그 누구도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

운명이라는 단어는 어느새 스러졌다.

시절과 인연이 맞닿으면 이뤄지는 게

삶의 법칙이자 순리이고

그것에 대한 저항이나 집착 없이

받아들이고 흘려보낸다면

그게 곧 자신을 평안케 하는 길이라고 한다.

과거나 미래, 틈 사이를 방황 하기 보다

‘지금 여기’에 오롯이 머무르려 하고,

내 안의 무수히도 많은

‘너’를 향해서 언제나 늘

따뜻함을 건네줄 수만 있다면

모든 일들은 순리대로 흘러가기 마련일테고

‘그렇게 흘러감’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는 서원의 대부분이 이뤄졌지만

앞으로는 설령 그렇지 않은 일들이 많더라도

괜찮을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시절과 인연의 어긋남,

그것 또한 순리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