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날씨 때문인지 퇴근 후엔 꼼짝도 않고 집에만 있게 된다. 이불 속은 왜 그렇게도 따뜻한지. 그 속에서 딩글하며 습관적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아, 이건 아닌데’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습관과 헤어지려는 작은 마음의 움직임이었다. 얽매임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이기도 했다.

가끔씩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휴대폰 와이파이, 데이터를

모두 OFF로 전환하는 것.

벨소리도 무음으로 변경,

휴대폰은 손에 닿지 않는 곳으로 밀어둔다.

휴대폰도, 일상도

‘ON’에서 ‘OFF’로 전환하기.

이건 나름 특단의 조치였다.

유튜브 영상을 보거나 SNS의 지나간 글들을 보면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 스스로에게

질려버린 순간이 있었다.

무의식적이고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에서

무언가에 얽매어 있는 내가 보이기도 했다.

자유로움이 무엇인지 경험하지 못했다면

아마도 그때의 얽매임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정말 자유로웠을 때의

홀가분함과 고요함

그리고 이어졌던 편안함과 만족감을

나는 찾고 있었다.

‘OFF’를 해야겠다는 결심은

수행처에서의 경험이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 년에 두어 번씩

열흘, 보름간 머물렀던 수행처는

도심과 먼 시골에 있다.

머무는 기간 동안 휴대폰은 반납,

묵언을 원칙으로 하며 집중수행을 한다.

수행처에서 할 것은 단 한가지 뿐이다.

‘지금, 여기’에 머무르며

순간 순간 일어나는 것들을 바라보는 것.

익숙하지 않았던 그곳의 환경이

처음엔 낯설고 불안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시간의 이로움을 느끼고 난 이후부터는

수행처에서 머무는 순간이

가장 편안하고 자유로웠던 것으로 새겨져 있었다.

오롯이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시간.

퇴근 후 옷을 갈아 입고

청소를 하고 밥을 지어 먹고 씻는 것,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며 하루를 정리하기.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이지만

그래서 평소엔 귀찮게 느껴지고

때로는 너무나 하기 싫을 때도 있지만

순간순간의 행동과 느낌을 자각하기만 하면

매번 새롭고 신선한 일로 다가 온다.

무언가를 하려고

마음을 분주하게 일으키기보다는

그저 ‘있음’에 존재하는 시간이기도 하고

‘있음’에 몰두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그저 바라보는 시간이다.

분주하고 수다스러운 마음,

쉼 없이 파도를 타는 감정이 아닌

평화와 고요함, 따뜻함과 자유로움이

그곳에 있다.

‘OFF’의 상태는 세상과의 단절이 아니라

나와 연결되는 ‘ON’의 시간이 아닐지.

시간이 흐를 수록
이 순간이 점점 더 소중해지는 것 같다.

님,

올 해 초, 연재를 시작하고 22번의 글을 전해드렸습니다.

약속했던 1년간의 연재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어요.

앞으로도 글을 계속 쓰고싶은데, 어떤 식으로 나아갈지는 고민 중이에요.^^ 여러분들께서는 그동안 라니에세이를 읽으며 어떠셨는지요. 여러분들과 마음을 나누며 앞으로 이야기의 내용도 꾸며보려고요.

보름 후에 라니에세이 마지막 글로 찾아뵐게요.

날씨가 많이 추워졌어요. 그 어느때보다 더 따뜻하게 하루하루를 보내시길 빕니다.🍁